고요한 밤 내린 검은 비 - 러브버그의 습격

이번 초여름은 까만 점들로 얼룩졌다. 계양산이 온통 까만 '카펫'으로 뒤덮였다는 제보가 쏟아졌었다. 그 주인공은 ‘러브버그(love bug)’라 불리는 붉은 등우단털파리다. 짝짓기 한 두 마리가 한 몸처럼 붙어 날아다니는 모습 때문에 얻은 별명이지만, 실제로는 악취·시신 더미·도심 교통 혼란까지 부른 골칫덩이다. 서울시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민원만 4,695건. “벌레 한 철”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한때 번져나갔다. 

1. 숫자로 보는 러브버그 폭주

2022년 4,418건 → 2023년 5,600건 → 2024년 9,296건 → 2025년 상반기만해도 벌써 4,695건.

세 차례 여름을 거치며 민원 그래프는 가파른 지그재그를 그렸다. 지난해 증가폭(66%)이 특히 컸고, 올해는 방제 예산 확대 덕에 절반 수준으로 주춤했지만 “정착 단계”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발생 원인이 사라진 게 아니라 관리 효과가 일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긴 호흡의 대응 로드맵을 주문했다. 

2. 따뜻해진 한반도, 버그에게 열린 문

러브버그는 원래 중국 남부·오키나와 등 아열대 습지에 터를 잡던 곤충이다. 평균 수명은 고작 3일이지만 한 마리가 500개의 알을 낳아 한 번 폭발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하면 막기 어렵다. 연구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70년엔 한반도 전역이 서식 가능지로 바뀔수도 있다는데 너무나 끔찍하다. 도심 열섬 현상·겨울 저온 약화가 북상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게 과학계 중론이다.

3. 생활 불쾌지수 상승, 똑똑한 대응법

  • 친환경 물살 방제: 약제 대신 고압 물분사로 성충을 떨어뜨리고 시신을 즉시 수거한다. 
  • 광원 포집기·향기 유인제: ‘빛’에 집착하는 특성을 거꾸로 이용해 집단 포획한다.
  • 문풍지·촘촘망: 성충 몸집(4~6 ㎜)을 고려해 촘촘한 방충망·창호 틈새 막음 필수적으로 시행한다.
  • 외출 후 세탁: 옷·신발 틈에서 알·시신이 실내로 유입되는 걸 막는다.

서울시는 살수차·포집기 400대를 순환 투입해 생활불쾌곤충 민원을 49% 줄였다고 발표했다. 물론 “화학 약제 남용은 생태계 교란을 더 키운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시민 제보 기반 ‘실시간 발생 지도’(서울시 스마트불편신고)까지 열려 있으니, 위치를 공유해 방제 타이밍을 앞당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협업 방법이다. 

4. 자연이 내놓은 설루션, 참새의 반격

“참새가 매장 유리를 덮은 러브버그를 뷔페처럼 먹더라”는 영상이 돌면서, 7월 초부터 신고 건수가 빠르게 감소했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원은 “외래종도 2~3년이면 토착 포식자 먹이망에 편입된다”며 자연 조절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었지만 참새는 논·밭 낟알도 좋아하기 때문에 생태계 균형을 위해 인위적 개체수 증식 대신 버드하우스·토종 관목으로 도심 서식지를 확대해 자발적 포식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불청객이 던진 숙제

러브버그는 겨우 며칠 살다 사라지는 작은 곤충일 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는 도시 생태계 균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징후다. 친환경 방제도, 생활 수칙도 결국은 기후변화 완화 노력과 맞물릴 때 지속력을 갖는다. 올여름 창문 앞에 내려앉은 검은 점을 바라보며, “단순 해충 퇴치”를 넘어 탄소 감축·도심 녹지 확대 같은 장기 해법까지 함께 떠올려야 할 때다. 누가 불청객이고, 누가 집주인인지 되묻는 질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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